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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

IMF 외환위기 3줄 요약

by 원모어 2023. 3. 15.

IMF 외환외기는 사실 1997년에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로,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이를 소재로 한 영화죠. 하지만 영화만으로 자세한 내용을 알기 어려워 검색해봐도 내용이 길고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서 제가 핵심내용만 아주 간단하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IMF 외환위기의 원인

IMF 외환위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정부의 외환 관리 실패와 대기업 및 금융기관의 부실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1995년 한국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것인데요.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유지를 위해 다량의 외화를 방출해서 원화가치 고평가를 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기업들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켰고 수출부진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도 누적되어만 갔습니다. 더구나 미국 금리인상으로 달러는 계속 유출됐는데, 태국 바트화 위기로 인해서 원화 가치가 결정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전의 한국 경제는 괜찮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대기업들이 무분별한 차입을 통해 회사를 키웠지만 방만한 경영으로 기업들의 손익계산서는 손해를 볼 뿐이었습니다. 이는 부실채권을 떠안은 금융기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금융기관은 독립관 기업이라기보다는 관치금융을 충실히 따르는 보조수단 정도였는데, 경쟁력도 없고 위기관리 능력도 없다 보니 IMF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IMF 외환위기의 경제적 영향

IMF 외환위기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경제입니다. 자본 유입을 목적으로 고금리 정책이 적용됐는데, 이는 결국 국내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단초가 되어 現 OK금융그룹 등 일본계 대부업 자본이 한국 시장이 진출하게 됐습니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공무원 감축, 대기업 구조조정, 정년 단축 등 대한민국 전반에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IMF 외환위기 하면 떠오르는 회사에서 잘린 가장과 흩어진 가족들 그리고 끼니를 걱정하는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흔한 풍경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IMF 외환위기에서도 살아남은 기업들은 위기관리와 긴축경영을 배우게 되어 이후 재계 순위는 큰 변화를 맞기도 했습니다.

IMF 외환위기의 사회적 영향

도로, 지하철, 철도 및 공항 등 SOC 사업은 IMF가 개입하면서 대부분 폐기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다만 공공사업을 통해서 경기를 진작시킬 필요성이 때문에 일부는 민자사업 형태로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기아-대우-쌍용-삼성이 시장의 플레이어였으나 아시는 것처럼 현대자동차가 결국 최종 승자가 되었습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스포츠계도 모기업의 도산, 교체 등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부 팀이 해체되기도 합니다. 대중문화 업계도 심한 타격을 이었는데, 가장 큰 이슈는 '스크린쿼터'였습니다. 한미투자협정에 따라 문화시장 개방을 위해 국산 영화 스크쿼터를 축소해야 됐는데, 영화인들의 반애운동과 애국심 자극이 결합되어 한참 이슈가 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취업시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찬밥이었던 공무원, 직업군인은 모두가 선호하는 직업이 됐다는 점은 아직도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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